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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

  • 연천닷컴  
  • 2004.10.28
  • 조회 : 17527


한국의 성곽......연천 당포성(사적468)


고구려가 남긴 성벽 홈, 문경노고산성과 아미산성에도 있어.....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삼화교 난간위에서 왼쪽을 보면 짙푸른 임진강 협곡이 내려다보인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은 호로고루성의 적벽보다 웅장하다. 그 적벽위에 또 하나의 고구려 당포성이 위용을 자랑한다.




◇ 임진강 적벽위의 당포성


삼화교를 나와 표지석 옆 안내판을 따라가면 당포성 입구, 자동차 진입도 충분하다. 입구에서 약 500m 정도에 당포성의 흔적이 보인다. 잡풀더미에 둔덕같이 보이는 시설물이 1500여년의 풍상을 헤쳐 온 고구려성벽이다. 성벽위에서면 임진강과 주변의 탁 트인 시야는 가슴을 뚫는다. 강바람도 상쾌하다. 고구려가 이곳에 요새를 만들만큼의 충분한 조건이다.


지난 2002년 10월~2003년 5월까지 육군박물관에서 당포성 1차 발굴조사를 했다. 인근에 있는 호로고루성과 지형 또는 성벽축조, 전체면적 등에서 너무나 닮았다. 여러 번에 걸쳐 흙을 다지고 그 위에 돌로 성벽을 올렸다. 성벽을 보강하는 보축벽도 3~4단계로 높게 쌓았다. 당포성은 전체 둘레 450m, 길이가 200m, 현재 남아 있는 동쪽 성벽은 높이가 6m나 된다.





◇ 발굴상태때 성벽


성벽밖에는 폭 6m, 깊이 3m의 해자보다는 규모가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성벽 밖으로 기둥을 세웠던 2개의 홈도 발견됐다. 바닥에는 나무기둥을 세웠던 확이 드러나 발굴당시 학계나 성곽전문가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런 형태의 시설물과 유사한 산성은 문경동로의 노고산성과 오대산 아미산성에서 볼 수 있다. 바닥기둥 확은 보이질 않지만 성벽 바깥에 여러 개의 홈이 파인 성벽을 기자가 당시 현장답사에서 촬영한 사진을 현재보관하고 있다.


2006년 4월 노고산성 발굴시 엄원식 문경시청 학예연구사(38)는 "노고성은 북쪽지역에서 안동이나 예천을 공격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군사적 요충지" 라며 "요철형 축성방식이 백두대간 남쪽 영남지방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요철형 축성은 고구려 성곽에서 나타나며 수직성벽을 쌓기 위한 거푸집과 성벽면의 지하수 압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철식 산성은 공통적으로 규모가 크고 산세가 험한 지역에 축성된 것으로 볼 때 전란시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 발굴후 복토된 성벽


당포성의 성벽은 현재 호로고루성과 마찬가지로 발굴 후 보존을 위해 흙으로 덮었다. 문화재를 답사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옛사람들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기위해 먼 길을 마다 않는다. 특히 성곽발굴현장 답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그러나 발굴조사 후 파헤친 유적은 보존 때문에 복토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단언코 말하건데 답사 객들도 문화재를 보호 할줄 알고 지키려는 애착심이 남다르다.


엄청난 국가의 경비를 들여 발굴한 현장을 몇몇 전문가들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것이 작금의 문화재 발굴실정이다.


지난해 1월 사적으로 지정된 연천의 호로고루성(사적 제 467호)과 은대리성(469호)도 아직 정비·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삼화교에서 본 당포성과 성 내부를 둘러본 후의 당포성은 실망 그 자체다. 문화재 안내판이 없다면 누가 이곳을 천수백년 전의 고구려성이라 할 수 있나. 성 인근에는 농작물로 인해 유적지가 멸실 상태다. 군데군데 박혀있는 개인 참호, 성 안쪽에 1대의 탱크와 성밖에는 2대의 탱크가 위장막 속에 숨어있다. 언뜻 보기에는 변방유적이 있어 군사훈련 또는 안보의식 체험 장소 때문에 갖다놓은 것으로 착각 할 정도다.





◇ 녹쓴채 방치된 탱크


가까이 가보면 접근금지라는 해당부대장의 문구와 육중한 무기가 흉물스럽다. 이 탱크들이 실전용인지 전시용인지는 모르지만 녹쓴 상태로 보아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답사 객들은 쓸모없는 고철덩어리에 눈살을 찌푸린다.


임진강은 한강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중요한 활동무대였다. 멀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영역 다툼의 치열한 싸움터였고, 가까이는 한반도를 가로 지르는 남북 분단의 한부분이 돼있다. 최근 이 일대가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남긴 얼마 되지 않는 유적들로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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