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의 가장 큰 매력은 타임머신을 탄 듯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가보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축제 프로그램의 한 장면. /연천군 제공
[군사도시 이미지 벗고 5월3~5일 다양한 행사]
1978년 4월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왔던 미군 병사 그렉 보엔(G·Bowen)은 일부러 깎아낸 듯한 모양의 주먹 만한 돌을 우연히 발견했다.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비슷한 형태의 돌 4개를 주워 당시 서울대 고고학과에 재직했던 김원룡(1922~1993) 교수에게 알렸다. 이것이 바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 연천 전곡리 선사 유적의 발단이다.
발굴이 본격화되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던 이 현무암 일대에서 주먹 도끼와 자르개 등 석기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더욱이 석기는 동아시아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아슐리안 형'으로 밝혀지면서 세계 고고학계를 경악케 했다.
당시 고고학계에서는 동아시아는 아슐리안 형보다 단순한 형태의 찍개형만 존재하고, 아프리카·유럽은 끝을 뾰족하게 가공한 형태의 아슐리안 문화로 대별하는 모비우스 학설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다.
고고학계는 물론 전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곡리 유적지 77만8천296㎡(23만5천여평)는 1979년 10월 사적 제268호로 지정됐고, 그뒤 11차례에 걸쳐 4천60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다.
그리고 20년 뒤. 어린이날을 포함한 5월3~5일 사흘간 이 일대는 구석기 생활을 체험하는 축제장으로 변하고 있다. 한반도 최초의 인간과 21세기 한반도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이 이 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근래들어 어린이날 대표 축제로 꼽히는 이 행사는 처음부터 축제로 기획된 것은 아니다. 연천군청 방효숙씨는 “처음에는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와 동아시아고고학회가 유적관에서 조촐하게 가진 기념식으로 시작됐다”며 “8회 때인 2000년부터 연천군이 주도하면서 지역축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축제는 연천군 주최, 축제 추진위(위원장·김규배 연천군수) 주관이다. 지난해 경찰 추산 참가 연인원은 9만3천여명. 자신감을 가진 연천군은 올해 예산을 5억5천만원으로 대폭 증액(2002년 1억1천만원)하고 가족단위 체험형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
축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다. 행사장 인근 쓰레기가 방치되면서 유적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천군은 이 축제를 발판으로 물난리와 군사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바꿔나간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국내 최고(最古) 유적지를 내세워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천연기념물 412호), 한탄강·임진강·재인폭포 등 자연자원, 경순왕릉·호로고루성지·삼곶리백제적석총 등을 연계해 '관광 지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축제 프로그램은 크게 ▲체험분야 ▲학술분야 ▲공연·놀이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올해는 특별히 놀이기구를 들여와 가족놀이공원을 조성하고, 전시회도 시도한다.
체험분야는 7개 프로그램의 '구석기 체험 스쿨'(4~5일 상설)로 진행된다. 석기를 직접 제작하는 석기제작교실, 석기의 효용성을 알아보는 석기사용교실을 비롯 토기와 움집을 제작하고 고고학 발굴을 체험할 수 있다.
학술분야는 국제학술행사와 전시회로 구성된다. 전곡리 유적은 제작연도에 대한 학계의 견해가 통일되지 않은 상태. 18만~21만년 전이라는 설과 4만5천년 전 내외라는 설로 나뉘어 있는데다, 2004년 '선사 유적관' 건립계획(현재 출토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5개 대학박물관에 분산보관중)을 세우고 있어 학술행사의 의미는 적지 않다.
심포지엄은 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천군체육문화센터에서 '전곡리유적의 지질학적 형성과정과 동아세아 구석기'를 제목으로 배기동 한양대 교수를 비롯해 국내 학자 10여명, 외국에선 일본 아키라 하야시다 교수 등 10여명이 참가한다. 전시회는 'Origins(오리진스)-세계인류의 기원전'이라는 제목으로 지구의 형성과 생명의 시작, 초기인류의 발달사와 두뇌의 발달 등을 인골 화석을 중심으로 보여주며 한양대 박물관이 주관한다.
공연·놀이는 어린이날 행사인만큼 인형극과 '난타' 등 타악 공연, 구석기를 주제로 한 한국마임협회의 '진화' '인간' 퍼포먼스, 그림그리기·글짓기 등 어린이 참여행사 그리고 나무심기·타임캡슐·놀이동산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주최 측은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세대가 아이와 따로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층별로 특화하려고 노력하고, 교육성과 재미에 초점을 뒀다”고 소개했다.
현대의 축제는 대부분 '체험'을 내세우고 있다. 가족단위 축제는 더욱 그렇다. 4편에서는 체험형 축제를 표방한 전곡리 구석기 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소개하고 발전 방향 등을 모색한다.
팀장·양훈도문화부장
글=류주선·유재명·정진오기자
사진=한영호·김종택·임열수기자
[체험축제에 바란다]
여가활동 및 소비문화의 다양성과 개성이 대두되는 포스트모던 사회인 현대에는 세계의 생활관습, 건축양식, 공연, 음악 및 미술, 문화유적 등 다양한 역사문화와 관련된 문화관광 행태가 보편화되고 있다. 관광객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단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체험함으로써 교육과 학습, 모험과 즐거움을 추구하려 한다.
국내 축제도 이러한 현상에 발맞춰 다양하고 독특한 체험을 줄 수 있는 '체험'형 축제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주 5일 근무제의 실시로 여가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문화소비의 수요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국내 체험축제는 이천도자기축제, 보령머드축제 등에서의 체험형 프로그램이 성공적 평가를 얻게 되면서 역사, 자연, 교육, 문화적 체험의 기획으로 그 영역과 형태가 확장되고 있다. 아예 체험형 축제로 기획된 사례로 2000년에 시작된 서산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가 있다.
포졸과 보부상이 돌아다니고 상평통보로 화폐가 유통되는 등의 조선시대로 재현된 해미읍성에서 관아체험, 옥사체험, 군영체험, 장터체험 등의 프로그램에 관광객이 축제의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축제이다.
지역의 역사문화를 교육적 체험과 결합시킨 연천구석기축제, 강화고인돌축제 등도 체험형 축제로 기획된 사례이다. 기존의 종합문화축제도 체험형 축제로 변환을 모색하고 있다. 수원화성문화제가 전통문화체험축제로, 온양문화제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역사문화를 체험하는 축제로 재구성되고 있는 현상이 그 예이다.
그동안 보여주는 축제가 주류를 이루다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 가는 체험축제 유형이 늘어가는 현상은 획일적이던 축제문화가 풍성해지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체험축제의 가능성과 유효성이 마치 모든 축제가 성공하기 위한 공식처럼 전국 각 지역축제로 퍼지고, 축제마다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백화점식으로 체험프로그램을 끼워 넣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개최되는 지역축제에서 체험프로그램을 강조하지 않는 축제가 거의 없을 정도로 체험축제는 트렌드가 되고 있으며, 체험이라는 형식 안에서 또 다른 획일적 축제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문화관광과 연계된 장소마케팅 전략으로 차별적인 축제의 개발에 급급해 하고 있는 지자체의 사정과 기획력이 미약한 지역의 실정이 있다. 또한 문화관광부가 문화관광축제를 선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체험프로그램 항목이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요소이다.
현재 확산되고 있는 체험축제의 상당 부분이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 자연환경 등에 의존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별 차별성이 없는 프로그램 구성을 보이고 있다. 체험축제가 축제로서 기획되기보다는 지역특성을 살리기 위한 이벤트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험이벤트가 아니라 체험축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요소에 대한 창의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한 예로 예술체험도 중요한 체험축제의 소재로 기획될 수 있다. 미국 시카고에서 1991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Gallery 37' 이라는 예술체험 프로젝트가 있는데 지역의 예술가와 청소년들이 공동으로 창작워크숍을 진행하고 지역 내 생활공간에서 전시행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예술체험축제이자 교육이 결합된 워크숍축제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 내 다른 도시와 영국의 버밍험 시로 확산되었다.
체험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체험 프로그램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축제적 체험'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축제마다 체험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차별적인 체험축제가 되는 것은 아니며, 각 축제가 지닌 고유한 주제와 목적에 맞는 창의적인 축제적 체험을 기획하고 특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추미경·(사)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기획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