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하늘 아래에서 만나는 산천들의 푸르름은 설레임을 준다. 풋풋함과 정겨움 그리고 무르익어 가는 가을 곡식들의 아름다움은 가히 한 폭의 그림이다. 어찌도 이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을까? 각자의 맡겨진 일손들에 바삐 살아가는 모습들은 가슴이 뭉클해 오는 감동이다.
문학 모임이 지방에서 있어 고속버스를 타게 되었다. 창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가을 풍경은 꿈을 꾸는 듯 아름다움이다. 낮은 산야에 작은 키로 서 있는 하얀 구절초, 청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바람에 한 번씩 하늘거리는 몸짓은 아름다움의 극치로 다가온다. 가끔씩 지나치는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오색의 물무늬를 한 방울씩 담으며 그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 여름 내 키워 올리고 기다리다 자기의 색깔을 맘껏 표현해 보이는 나무들이 물들어 있는 것이다.
물드는 일 어쩌면 우리내 삶도 그렇지 않을까? 봄꽃으로 피우고 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나고 갈무리하고 열매맺는 계절 가을이 꼭 우리의 사람 살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을 나무의 단풍으로 물들여지는 모습을 보며 하루의 삶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물들여지기 위해서는 내것을 내어 놓아야 함을 깨닫는 오늘이다. 그 자리만큼 남겨 놓는 일이다. 어쩌면 그 자리가 내어 놓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을, 친구를 내 욕심에서 내려 놓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것처럼 쉽지 않은 내 자리, 꿈, 욕심의 자리를 내려 놓을 때만이 아름다운 단풍을 물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다.
오랜 기다림으로 있었던 여름 나무들이, 여름 한낮의 강한 뙤약볕에 견뎠을 나무 이파리들의 노래인 것이다. 가을 단풍이 물들여지는 것은 그래서 바라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고 아련한 추억의 고향을 그리게 하고, 인생을, 삶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게하는 것이리라. 또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준비하게 해주는 귀한 시간인 것이리라. 나의 살갗을 조금씩 긁어 내어 나와 다른 색깔을 받아들이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색깔이 나와 함께 물들여지는 일인 것이다. 아름다움은 결국 한 가지에 머물지 않고 이처럼 나와 다른 또 다른 것과 만나 창조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어주고 받아주는 일 말이다. 내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깊은 마음을 만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때로는 혼자의 아픔이 결코 고통이 아닐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만나 어루만질 수 있는 힘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높고 맑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가을나무들을 수 놓는 가을 단풍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파랑 하늘에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단풍의 그림들이 있어 더욱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맘껏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바로 여기가 행복의 천국인 것이다. 어찌 보이지 않는 곳만 바라다 보며 행복하다 말하겠는가? 여기서 누릴 수 있어야 참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서로 서로 만나는 일, 물들여지는 일, 나를 내어 놓는 일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내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받아 들이는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생각을 만나본다. 내어놓는 일, 받아들이는 일, 바로 이것이 사랑임을 깨닫는 귀한 날이다. 가을 단풍을 만나며 서로의 마음을 만나 물들여지는 풍성한 가을이길 바램에 놓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