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임진강 빙애여울. 눈 덮인 얕은 강가에서 세계적 희귀종인 두루미 한 가족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정수리가 붉고 목이 새카만 어미새와 목 색깔이 옅은 아기새 두 마리. 그 중에는 흑두루미 한 마리도 끼어 있었다.
해마다 겨울을 보내기 위해 시베리아 등지에서 날아온 세계적인 희귀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들이 지난 20일 경기 연천군 임진강 빙애여울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사진제공 |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
“2006년 저 가족에 입양된 ‘미운 오리'예요. 처음 왔을 땐 조그마했는데 올해는 제법 컸네요. 빙애여울에는 흑두루미가 딱 한마리예요. 쟤 덕분에 해마다 같은 두루미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됐죠.”(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
매년 11월이면 찾아오던 흑두루미 가족은 이제 보기 힘들게 됐다. 2010년이면 임진강 하류에 군남 홍수조절댐이 들어서 이들의 서식지인 횡산리·삼곶리 일대가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댐공사는 이미 지난해 봄 첫삽을 떴다.
연천 임진강변은 철원평야에 이어 국내 제2의 두루미 서식지다. 매년 시베리아 등지에서 200여마리가 날아와 겨울을 난다. 휴전선과 인접한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인적이 뜸한 데다 농경지가 많아 먹이도 풍부해서다.
지난달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녹색연합 공동 조사에서는 170마리의 두루미가 발견됐다. 전세계 28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돼 있다.
강변의 두루미는 도심의 비둘기만큼이나 많았다. 이날 목격한 것만 70마리가 넘는다. 낮엔 강변 율무밭에서 추수하고 남은 열매를 쪼아먹고 밤엔 여울에서 한쪽 다리를 접고 잠잔다.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도 자주 눈에 띈다. 지난달 조사에서는 57마리가 발견됐다.
빙애여울에서 3.8㎞ 하류에서는 홍수조절지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1996~99년 임진강 수해 후 홍수대책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7160만 규모로 여름철엔 홍수를 조절하고 10~5월엔 물을 채워둔다. 문제는 담수 기간이 두루미 도래철과 겹친다는 것. 수위가 현재보다 6 올라 두루미의 ‘잠자리’인 여울은 물론 ‘밥상’인 율무밭도 물에 잠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북한이 휴전선 42㎞ 상류에 황강댐을 건설하는 등 임진강 중·하류에 5개의 댐을 설치하면서 물부족이 예상돼 담수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류지훈 수자원공사 환경생태팀장은 “물 부족을 막고 임진강 수생태계 보전을 위해 미리 물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홍수조절기능은 인정하지만 담수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두루미 월동기간에라도 수문을 열어 수위를 현재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창희 전 경기북부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담수기간이 농한기여서 많은 물이 필요없는 데다 임진강 하류에 농경지가 있는 북한이 하류가 가물 정도로 물을 가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수생태계 보전을 명목으로 또다른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은 “2006년 사후환경영향평가에서 두루미 개체수를 3마리로 축소 보고한 기관이 바로 수자원공사”라며 “새삼스럽게 생태계 보전을 위해 댐을 짓겠다는 주장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유소영 녹색연합 간사는 “댐건설의 타당성과 규모, 담수 수위, 서식지 천연기념물 지정 등을 근본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