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경기도 연천군 일대엔 귀중한 문화유적이 참 많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흐르는 이곳엔 깎아 내린 듯한 절벽의 주상절리 등 수려한 자연경관, 구석기시대의 전곡리 선사유적지,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삼국시대의 적석총과 호로고루성·당포성·경순왕릉·숭의전 등이 널려 있다. 해방 후 북위 38도선으로, 한국동란 이후엔 휴전선으로 나뉜 연천 지역은 지난 60여 년간 군사작전 지역으로 묶였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각종 규제와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아 왔다. 따라서 주민들의 개발욕구가 팽창하기 시작했고, 지방자치제 시행 후 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이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보존 가치’보다 ‘개발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보존이 중요한 문화재 분야는 단체장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문화재 주변의 현상 변경권이 지자체에 대폭 위임됨에 따라 많은 건축 공사가 개발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선출된 단체장들에게 문화재 현상을 바꾸는 권한을 준다는 것은, 아닌 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연천 지역에서 구석기유물을 발굴할 당시 5곳의 피트를 파면 2곳에서 돌도끼가 나왔다 한다. 삼국시대에 임진강을 경계로 대치했던 인근 지역에서도 고구려·신라·백제의 유물이 고루 출토된다. 특히 호로고루성은 삼국의 축성 기법으로 쌓은 유적이다. 연천군은 모든 지역이 문화재 구역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1999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의 물거미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제412호로 지정되면서, 반경 500m 지역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였다. 주민들은 각종 규제와 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문화재청은 2007년 8월 현무암 주상절리를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했다. 주민들은 주상절리가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막대한 재산권의 침해를 받는다며 강력 반발했다. 또 첨단 산업단지가 2007년 말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공사 중 문화재의 출토로 전면 백지화됐다. 그 후 일부 주민은 “공사 관계자들은 작업 중 문화재가 나오면 무조건 덮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호하려면 문화재 지정이 불가피하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선 문화재 보호구역이나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곳의 땅 주인이나 주민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깊게 심어 줘야 한다. 이와 함께 실질적인 보상, 다양한 혜택 제공 등 지원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귀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지거나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게 하려면 정부 차원의 대책도 물론 필요하다. 지역주민들도 훌륭한 우리 문화유적을 반드시 지켜내고 말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