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하 깊이 3개 노선 건설 교통혁명…30조원 생산유발 효과, 29만명 일자리 창출도 기대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던 대심도 광역급행철도가 올해부터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 2월 23일 서울무역전시장에서 개최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 토론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부쩍 이에 관심을 쏟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날 축사를 통해 “경기도 최대 민생 현안이 교통문제”라며 “신도시는 매년 늘어나지만, 신도시의 교통대책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2002년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었던 효순·미선 사건도 따지고 보면 경기 북부지역의 열악한 도로 사정에서 비롯했다는 것.
김 지사는 그동안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 어느 지사보다 많은 예산을 편성해 집행했으나 개선 효과가 없었고, 고민 끝에 대심도 고속전철을 생각해냈지만 지방 재정으로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음도 토로했다.
대통령과 국토해양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재원 마련의 어려움, 노선 선정 문제 등으로 아직 실행 단계에 들어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토론회를 계기로 빠른 일처리를 기대했다.
동탄 신도시와 서울 삼성동을 잇는다
이날 토론회에서 대한교통학회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통해 동탄 신도시와 서울 삼성동을 잇는 대심도(大深度·Deep Tunnel) 급행철도의 수요분석 결과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화성 동탄 신도시-서울 삼성 간을 운행하는 급행철도는 노선 길이 37.7km, 최고속도 200km, 표정속도(表定速度) 123km로 운행할 경우 비용 대비 이익률(B/C)이 1.23으로 나와 경제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대한교통학회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동탄 신도시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신도시 입주 시기에 맞춰 서울 삼성동까지 급행철도가 놓일 수 있도록 국토해양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수도권의 인구집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1월1일 현재 경기도 인구가 1129만명, 서울이 1020만명, 인천이 269만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4954만 명의 49%가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시군 단위의 인구 규모로만 따져도 경기도의 시군 단위가 1위에서 3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1위가 수원으로 106만명이고, 2위는 94만명의 성남, 3위는 93만명의 고양시다.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인구가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많아봤자 세 가지다. 철도, 버스, 자가용이 그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대중교통을 외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철도는 갈아타는 게 불편하고, 도심 전철은 노선이 꼬불꼬불한데다 역 간 거리가 짧아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한다. 버스는 느린데다 아침부터 만원이다. 사람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길이 막혀도 자가용을 이용한다. 이게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교통 수단의 시간을 대폭 줄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광역급행철도는 이래서 나온 것이다. 열차의 속도를 얘기할 때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최고속도이고, 또 하나는 표정속도다. 최고속도는 순간속도를 말한다. 표정속도는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움직인 거리를 총 걸린 시간으로 나눈 속도다. 역에서 정차한 시간까지 포함한 열차의 실제 속도로 대중교통 수단의 서비스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한다.
앞서 대한교통학회가 발표했듯이 대심도 광역급행철도는 현재 최고속도 200km, 표정속도 123km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화성 동탄 신도시-서울 삼성동 37.7km를 이 속도로 달리면 18분 걸린다는 얘기다. 이 정도 속도를 내야 승용차 인구를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교통학회가 4월 중에 발표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안은 전체 3개 축으로 177.2k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동탄 신도시-일산 킨텍스 노선 A구간 77.6km이며, 두 번째는 경기도 금정-의정부 노선 B구간 49.3km이고, 세 번째는 인천 송도-서울 청량리 노선 C구간 50.3km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인 동탄 신도시-일산 킨텍스 구간은 KTX 수서-평택선 연장 공사와 연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즉 국토부가 현재 예비타당성을 조사 중인 수서-평택 KTX 신설 구간 중 일부 구간(28.5km)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집어넣는다는 얘기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3개 축으로 구성
KTX 열차가 다니는 선로에 수도권 급행전철이 다녀도 문제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수서행(혹은 수서발) KTX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면, 그 사이에 7분 간격(러시아워 기준)으로 급행전철을 운행시킨다는 얘기다. 서울 수서-화성 동탄 사이에 KTX역이 들어설 리는 없다.
그렇다고 급행전철 역시 이 구간을 논스톱으로 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역이 최소 두세 개쯤은 들어선다고 봐야 한다. 즉 급행전철 역에 부본선(예비선로)을 마련해 급행전철이 정차해 있는 동안 KTX가 지나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땅을 파고 선로를 까는 일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수서-강남 간 대심도 철도 전용구간(9.2km) 공사와 역사 신축, 운영 시스템 마련 등에만 비용이 들어간다면 공사비가 상당히 절감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광역급행철도는 사실 지난 2007년 대선 때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공약에도 있었다. 한반도에 5대 철도망을 구축하는 가운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만들어 수도권 교통체증을 해결하고 강남북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공약은 국민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에 맞서기 위해 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과 함께, BBK논쟁에 휘말려 여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전문가들의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따금 거론되던 광역급행전철 구상은 2007년 10월 동탄 2지구 택지개발 발표 때 다시 빛을 보게 된다. 경기도는 이때 경기 남부지역 광역 교통망 연구용역 보고를 통해 대심도 광역급행철도 건설을 대안으로 제안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에 이를 건의했다. 이어 경기도시공사가 지난해 4월 대한교통학회에 용역을 주고 올해 2월까지 세 차례의 토론회와 국토부 주관으로 여섯 차례의 TF팀 회의를 열기에 이른 것이다.
30조원 생산유발효과와 29만개 일자리 창출
앞서도 얘기했듯이 승용차 인구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전철이 속도를 내야 하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노선을 반듯하게 펴고 정차역을 줄여야 한다. 현재 동탄-서울 강남 구간에 예상되는 정차역은 2, 3개다.
그런데 역이 적으면 접근성이 떨어져 승객이 외면할 우려가 있다. 전철이 아무리 빨라도 굳이 멀리까지 가서 전철을 타겠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면 버스 승객이 비 맞지 않고 역 안에서 내려 바로 전철 승강구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하고, 자전거 정도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객이 감동하는 역사 시설과 연계 시스템을 만들어야 승용차 인구를 흡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3개 축 광역급행철도가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는 승용차 중에서 1일 20만대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고승영 교수는 광역급행철도 개통 이후 운행비용 및 통행시간 절감 등으로 인한 경제적 편익이 매년 2조200억원, 20년간 62조원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역시 연간 149억톤이 감소해 CO2 처리비용이 595억원, 도로부문 에너지 소비량은 연간 45톤이 줄어 5846억원 상당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30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9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 등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로 인한 지역경제 살리기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1일 100만명쯤 된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76만명쯤 된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1일 50만명쯤 된다. 이 중에서 광역급행철도가 88만명을 흡수해, 고속도로 통행량을 10%가량 줄이면 도로 사정은 크게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방학이나 여름 휴가철이 되면 도심이 한가해지는데, 이때 줄어드는 교통량이 실제로는 5% 안팎이다. 10%를 줄인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광역급행철도가 경기도 한 곳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시, 인천시뿐 아니라 국토해양부 등 중앙정부도 관련된다. 정부 재정으로 건설할 것인지, 민간자본투자를 유치할 것인지 등 넘어야 할 언덕이 많이 있다. 지난 2월 열린 토론회에서 서울대 고승영 교수는 약 15조원으로 예상되는 총 공사비를 모두 국가 재정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렵고, 민자유치를 통해 건설과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투자자들도 탐낸다
민간투자사업계획은 현재 현대산업개발 등 건설 상위 10개사가 컨소시엄 구성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국토부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기본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바로 민자 참여를 제안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이 계획안을 한국개발연구원(KDI) 내 공공투자관리센터에 넘겨 적격성 검사를 받는다. 외부의 제안이 말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심사기간은 원칙적으로 6개월이다.
김포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운행하는 공항철도가 있다. 승객이 거의 없는데도,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추진돼 오는 2040년까지 예측수효 90%에 못 미치는 미달분을 정부가 전액 보조하도록 돼 있다. 이에 반해 대심도 등 민간제안사업은 정부가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민간 업체가 스스로 수익성을 판단해서 제안하는 것이다. 철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자사업의 장점으로는 정부 재정 공사보다 예정된 공사기간을 잘 지킨다는 점이다. 지체보상금 부담이 무거운데다, 빨리 완공해서 투자금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산업대 김시곤 교수는 민간에서 시행할 경우, 역세권 개발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지역 발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 건설사들이 고작 열차표 파는 정도의 수익만 생각할 리 없다는 것이다. 역 가까운 곳에 아파트와 상가, 유치원, 극장 등이 모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으면 신혼부부, 맞벌이부부에게 딱 알맞고, 이는 서울 강남의 집값을 잡는 묘수가 된다는 설명이다.
민간투자사업이 성립되려면 민간 투자액이 총 사업비의 50%를 넘어야 한다. 3개 축 총 공사비를 15조원으로 예상한다면 절반인 7조5000억원 이상을 민간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정부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 광역철도는 국가사업이므로 정부가 75%를 부담하고, 25%를 지자체가 분담하도록 돼 있다. 지자체 25%는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연장 비율로 부담하는 게 합리적이다. 3개 지자체 합쳐야 1조원이 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재원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대심도가 만든다”
대심도(大深度 ·Deep Tunnel)라는 용어 때문에 전 구간을 땅속 깊이 건설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무자들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도심 구간은 당연히 땅 밑으로 깊게 들어가겠지만, 외곽 구간은 현재 지하철 정도인 20~30m 깊이로 해도 문제가 없고, 일부는 지상 노선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이 2017년을 목표로 공사 중인 런던 외곽 급행철도(Great London CrossRail)는 도심 지역만 60m 대심도로 공사하고, 외곽은 지상 노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설계를 해봐야 알겠지만, 우리나라도 일부 구간은 고속도로 밑으로 노선을 까는 천심도(淺深度·Shallow Tunnel) 방안도 생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한 푼이라도 경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문제는 3개 지자체가 의견을 모으고, 국토부가 이를 바탕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다. 노선 선정을 둘러싸고 국회의원의 압력 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또 수도권에만 투자하느냐는 지방 여론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서울시가 계획 중인 경전철 노선만 7개에 달하는데, 이 경전철과 대심도 광역급행철도 건설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도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기존의 교통수단으로는 어떤 정책도 승용차 수효를 줄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광역급행전철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선진 외국의 대도시권은 철도교통 이용률이 80%를 웃돈다. 일본 도쿄권의 철도교통 이용률은 90%를 넘는 반면 우리나라 수도권은 20%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30년 전에 기존 전철망과 별도로 파리 교외에 5개 노선 580km의 급행전철(RER)을 깔았다. 최고속도 100km, 표정속도 50~60km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지금 우리가 놓고자 하는 대심도 광역급행전철은 이보다 2배 빠른 속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대 고승영 교수는 이 시스템이 세계 최고의 명품 지하철이 될 수 있다며, 황우석 박사가 중도하차해 열지 못한 3만달러 시대를 이제 대심도가 만들어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대심도 터널의 장단점
대심도 터널의 장점-토지 사용의 보상이 없어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다.-합리적인 노선 설계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소음과 진동을 줄여 지상의 도시환경을 보전하는 데 유리하다.-혼잡한 지상에서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줄일 수 있다.-지진 피해가 거의 없다.
대심도 터널의 과제와 문제점-환기, 배수 등 터널 내 완벽한 환경대책 -화재 등 터널 내 방재 대책-출입구의 제한 및 향후 확장의 어려움-시설이 노후화하면 유지보수비가 급격히 상승할 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