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박지영 기자] "이달초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한 초등학교에 갔을 땝니다. 우리 예술단이 경기민요와 부채춤.사물놀이를 선보였는데 관객들이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관객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는데 요즘엔 도통 이런 공연을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경기도문화예술회관 홍사종(洪思琮 .47) 관장의 얘기는 도무지 멈출 요량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웃간에도 두세달만에 얼굴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하지 않으면 집에서 문닫고 TV나 보니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거죠. 순간, 소외 지역에 찾아가는 공연을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1회성으로 하는 공연이 아닙니다. 사라져간 공동체의 끈을 이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홍 관장이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을 맡은 것은 지난 2월말. 그의 첫번째 사업은 '모세혈관 문화운동'이었다. 경기도 내에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들을 찾아가며 공연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는 지난 96년부터 4년여간 정동극장장으로 재직할 당시 독특한 마케팅 전략으로 극장을 확 탈바꿈시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기발하게 쏟아지는 아이디어 덕분에 '아이디어맨'으로 불렸지만 일부에서는 "순수예술로 장사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5월초부터 시작한 '모세혈관 문화운동'도 반짝 이벤트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기도 한다. 서울 정동극장에서 이뤘던 그의 꿈이 과연 경기도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가시화할까. 그를 만났다.
-정동극장에 비해 규모도 크고 지향하는 바도 바르다.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도 문예회관은 시설이 좋을 뿐만 아니라 국악관현악단.극단 등을 보유하고 있어 소프트웨어 또한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시설 활용률이 20%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돼 왔다. 극장이 낮에 텅텅비어 음산하기까지 하다. 낮에 학생들을 초청해 전통 문화 교육을 하는 등 올해까지 활용률을 60%로 올리며 분위기를 띄울 생각이다."
그는 열악한 극장 수익 구조를 극복하고자 6월부터는 공연 관람료를 5천원에서 8천원으로 올린다. 반면 시민이 즐겨 찾는 문턱 낮은 공연장을 만들기 위해 6월초 무료 야외 음악축제도 함께 열 생각이다.
-'모세혈관 문화운동'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나.
"지금까지 찾아가는 공연이라고 해봤자 시.군.구 지역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읍.면.동 지역까지 들어간다. 초등학교 강당이나 면사무소를 활용해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지금까지 가평.남양주.안성 등 10여곳을 다녀왔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곳은 방문할 계획이다. 수십여개의 레퍼토리를 준비해놓고 각 지역에서 원하는 공연, 원하는 시간에 찾아가는 방식이다."
-대외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정작 문예회관 운영에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문예회관과 도립예술단은 1천만 경기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당연히 모든 도민에게 수혜가 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생각해보라. 경기도 북부 연천에서 수원까지 누가 일부러 공연보러 오겠는가. 현실이 안된다면 그것을 깨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연천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문예회관 내부에서는 점진적으로 공연횟수를 늘리고 우수 연출자를 초청해 공연의 질도 좀더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공연장 무대에 오르던 단원들이 지방의 허름한 장소에서 공연하는 데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아티스트가 화려한 무대에만 서려는 것은 귀족주의다. 관객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은 무대다. 노르웨이 교향악단은 종종 외딴 섬을 찾아가 어민들을 대상으로 공연한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센트럴 파크에서 드러눕고 떠드는 관객들 앞에서도 연주한다."
그는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이를 현장에 적용한다. 과거 정동극장장 시절 직장인을 위한 정오의 예술무대, 학교와 연계한 전통문화 특화교실 등은 다른 극장에서도 따라하는 유명 레퍼토리가 됐다. 그는 "처음엔 이런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도 많았지만 결국 성공작이었음을 입증한 셈"이라며 "도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지방 문화를 부흥하는 전범(典範)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금 출발선상에서 발을 뗐다. 예술회관의 내실화를 꾀하는 동시에 지역 구석구석에 골고루 문화의 향기를 심어주는 일이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3년으로 주어진 임기 동안 그의 새로운 활약을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