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비닐 봉지 속에 담겨진 이 오이를 보고 신기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들은 봉지에 쓰여진 ‘산소(O₂) 오이’ 마크를 보고 “산소처럼 신선한 오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산소의 원소(元素)기호 ‘O₂’를 알파벳 ‘오(○)’에 아라비아 숫자 영어 발음인 ‘투(2)’로 읽지 않고, 알파벳 ‘오(○)’는 그대로 하되 숫자를 우리말인 ‘이(2)’로 발음해 ‘오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하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연천군에서 특산물로 생산하고 있는 ‘산소 오이’가 요즘 서울 등 도시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소장 이상호·52)가 1989년부터 추진해온 ‘산소 오이’는 비닐하우스에서 반듯하고 튼실하게 자란 길이 8~10㎝의 어린 오이에 인체에 무해한 길이 30㎝의 얇은 비닐봉지를 씌워 재배한 것이 특징. 보통 25~27㎝ 크기로 다 자란 오이도 엄격한 선별 작업에 합격해야만 출하될 수 있다.
봉지를 씌워 재배하므로 농약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수분 감소를 막아 신선도 유지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산소 오이’는 지난 4월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5월 중순부터 시장으로 나가시 시작했다. 지금은 10개가 들어가는 한상자에 4000~5000원의 가격으로 서울·분당·의정부 등에 위치한 대형 백화점과 할인매장 20여곳으로 출하, 청정 농산물을 선호하는 주부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농가들은 처음엔 “일일이 봉지를 씌우는 것도 힘든데, 그 중에서도 잘 자란 것만 골라 출하하면 타산이 안맞는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농업기술센터측은 “청정(淸淨)지역 연천만 강조해선 농산물이 잘 팔리지 않는다. 신기술과 접목된 특화 상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농가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에 신윤대(52·군남면 선곡리)씨 등 10여 농가에서 “한번 해보자”며 ‘산소 오이’ 재배에 지난 3~4월부터 뛰어들었고, 낙과(落果) 등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재배에 땀을 쏟아부었다. 몇몇 농민들은 오이를 들고 직접 서울의 백화점으로 나가 주부들의 반응을 체크했고, 마침내 농가들은 하루 평균 3500여개의 오이를 지난 5월부터 시장에 내놓았던 것.
반응은 대단했다. 백화점과 유통업체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공급량을 늘려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불경기 여파도 있고, 다른 오이보다 20~30% 정도 비싸 잘 안팔릴 것으로 생각했던 농민들은 흥이 나기 시작했다. 75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를 재배 중인 왕병암(46·미산면 우정리)씨는 “처음에는 오이를 봉지에 씌워 정성스레 키웠어도 출하 전 50%만 합격해 낙담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노하우와 판매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앞으로 ‘산소 오이’만 전문적으로 재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천군 농업기술센터 원예기술담당 신동준(45) 계장은 “일반 오이만 재배하는 농가들도 7~8월부터 시작되는 2기작 때부터 ‘산소 오이’ 재배에 동참하고 싶어한다”며 “차별화된 기술로 농가 수익이 늘 수 있다는 것을 ‘산소 오이’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031)839-25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