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종종 무지와 악의로 왜곡돼 왔다. 국사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먹도끼만 봐도 그렇다.
1978년 4월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일이 터졌다. 동두천에 근무하던 그레그 보웬이란 미군 병사가 한탄강 유원지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이전까지 학계는 유럽·아프리카와 달리 저급한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 문화가 없다는 ‘모비우스 학설’이 주류였다. 결국 돌멩이 몇개가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는 교과서 너머에 있는 이러한 사실을 탐구하는 모임이다. 99년 동아리를 만든 조인 교사(29)를 비롯, 현재 32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찾아 교과서 밖으로 걸어나왔다. 성실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일일이 발로 뛰면서 체득한다. 평소에는 서울 시내를 주로 다니고, 주말·방학에는 지방까지 원정 답사를 나간다.
답사부를 맡고 있는 김혜진양(17)은 “여러 장소 가운데 일정에 맞춰 선정하고, 사전 답사도 다녀온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종묘와 수원 화성을 골랐다. “종묘는 가족들과 간 적은 있는데 모른 채 지나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서요”.
개인적 체험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교육부’는 데이터로 만들어 공유한다. 예를 들어 탑과 부도, 석등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발표를 한다. 발표자는 모든 내용을 줄줄 욀 만큼 능숙하다.
판소리의 대가 신재효 선생의 고택에서는 지루한 설명에 춘향가 중 사랑가 한 소절을 곁들이기도 했다. 다른 학생은 고창 읍성에서 한지를 얼굴에 붙인 뒤 물을 뿌려 질식시키는 조선시대 형벌인 도모지형(塗貌紙刑)을 보여줬다. 한번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 설화가 깃든 계림에서 그림동화 구연도 했다. 덕분에 주위 관광객들 이목을 사로잡는다. 경주 분황사터에서는 관광객들이 회원들 버스까지 타고 따라다니며 배웠을 정도다. 비석 같은 유물의 탁본도 손수 만든다. 지난해는 ‘명성황후’ ‘허준’ 등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의 왜곡된 곳을 짚어내 교내 축제에서 친구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4·19나 5·18 같은 현대사에도 시간을 할애한다. 위안부 문제는 자체 세미나도 가졌다. 부안에서는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보며 환경과 개발의 딜레마를 느꼈다.
역사란 무엇인가. 주먹도끼 회원에게 아놀드 토인비나 EH 카 같은 거물 역사학자의 풀이나 백과사전은 큰 의미가 없다. 책 속에 박제된 역사를 넘어 현장에서 다리품 팔아가며 깨닫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들에게 역사는 딱딱한 과거가 아니다. 재미를 추구하면서 사실을 하나 둘 익혀가며 역사를 다시 살아 숨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