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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굴레 ♧
  • 2003.05.19
  • 조회 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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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은 모두 얼마나 되는가?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도 '몸'을 '짐'으로 여기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박목월 시인이 '왕십리'에서 '내 몸은 너무 무겁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때로 내 몸이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몸이 느끼는 무게라는 것이 결국 지구와 내 육체 간에 숙명처럼 주어진 법칙일 텐데

그리고 나에겐 위와 아래로 느껴지는 공간 개념이 지구로서는 그저 둥글게 그리는 원에 불과할 텐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동물로 태어나 땅을 원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 몸이 너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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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굴레 ♧

그는 산더미 같은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기대'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이 선물이 죽을 때까지 심신을 옥죄는 굴레가 되리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이 굴레는 고스란히 자식에게 유전됩니다

유년기에는 '버림받은 우정'이라는 상처를 입습니다
10대가 되자 '입사와 장래'가 여물지 않은 몸과 마음을 내리누릅니다
더불어 '이성과 외모'라는 별책 부록을 얹습니다
20대가 되자 '취업'의 벽이 가로막습니다
30대가 되어 '결혼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피신하나 이내 울타리가 감옥의 철문으로 바뀝니다
40대가 되자 '돈과 자식'이라는 바라만 보아야 하는 강이 흐릅니다
강변의 푯말에는 '건강'이라는 체크리스트가 꼬리표처럼 달라붙습니다
50대가 되자 발 딛고 설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60대가 되자 허리가 휠 만큼 무거운 짐으로 발걸음을 떼기조차 버겁습니다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사사로운 감정만 더해갑니다
70대가 되자 임박한 죽음조차 내리누르는 짐보다는 가볍습니다
살아서는 부리지 못하는 짐
대지에 몸을 누이자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모든 것'이 흩어집니다


- 우화소설 <물고기 남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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