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룡의 의병장 이야기] (16) 진위대 참교 출신 의병장 하상태
군대해산 뒤 경기 파주 일대서 거병
의병 300명 이끌고 동두천 일본군 병참소 습격
명예로운 죽음 위해 체포 뒤 수차례 자살 시도
군대 해산에 반발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총탄 부족으로 체포된 군인들(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하상태 의병장 묘소. 사진제공=신창규
1895년 지방의 질서유지와 변경수비를 목적으로 근대적 지방군대가 생겼으니, 이른바 '진위대'였다. 대한제국의 육군은 몇 차례 재편을 거쳐 1902년 10월 30일 당시 중앙에 원수부 250명, 호위대 730명, 친위대 4천426명, 시위대 5천174명, 무관학교 670명(장교·하사관 생도 600명 포함), 각 지방의 진위대 1만8천100여 명 등 모두 2만9천350여 명에 달했다.
1904년 8월, 일제는 7개 연대 규모의 한국군을 감축하기 위해 이른바 군제개혁안을 제의, 이듬해 원수부를 해체한 뒤부터 점차 병력을 줄여 나갔다. 1907년 7월 말 한국군은 서울의 시위대 2개 연대를 포함해 4천여 명, 지방 8곳의 진위대 4천4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일제는 한국군이 그들의 야욕을 저해할 수 있는 세력이 된다고 판단, 8월 1일 전격적으로 군대를 해산시켰다. 1907년 8월 1일 오전 8시, 시위대 1연대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권총으로 자결한 뒤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시위대와 일본군 사이에 4시간가량 접전이 있었다. 해산 소문이 퍼지자, 각지의 진위대 군인들은 오히려 무장하고 병영을 점령해 파견된 일본군과 접전하면서 점차 기존의 의병부대와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하상태(1868~1909)는 강화진위대 참교(현 하사) 출신 의병장이다. 군대가 해산되자 경기도 장단(현 파주시와 북한 장풍군)에서 의병을 일으켜 '해동보국신민창의대장(海東保國新民倡義大將)'으로 활약했다. 수시로 연기우(延起羽) 의병장의 부대와 연합해, 임진강 고랑포를 중심으로 경기도와 황해도 접경 지역과 강원도 철원, 평강 지역인 '임진북남예성정맥'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에서 태어난 하상태 의병장의 집은 경기도 양주군 화조면(현 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로 양주군 구리면 인창리(현 구리시 인창동)가 주소지였던 강화진위대 부교(현 중사) 출신 연기우 의병장과는 동향인이자 동료였다. 1908년 5월에는 연기우와 합진하여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동두천 방면으로 나아가 일본군 병참소를 습격, 많은 전과를 올렸다.
'매천야록'은 임진강 북쪽에서 예성강 남쪽에 걸친 '임진북남예성정맥'에서 활약한 의병장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연기우·김수민·하상태·이진용·한정만·윤인순·정용대 등은 동쪽으로는 철원·평강으로부터 서쪽으로는 평산·백천에 이르기까지 3도를 왕래하니 갑자기 제어하기가 어려워서 일본인은 몹시 괴로워했다."
하상태 의병장은 1909년 6월까지 임진북남예성정맥 지역인 개성·양주·장단·적성·철원·파주·평강·포천 등지에서 의병투쟁을 벌이면서 연기우, 윤인순 등의 의진과 연합하기도 했다. 일제의 '폭도에 관한 편책'에는 모두 21차례 이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마침내 일본군 삭령(현 경기도 연천) 수비대는 하상태 의병을 토벌하기 위해 1909년 6월 3일부터 체포된 의병을 앞세워 하 의병장의 주요 전적지였던 장단군 일대를 수색했다. 6월 9일 새벽 4시 장단군 대강면(현 북한 장풍군) 별암동에 도착한 일제는 즉시 그곳을 포위하고 마을사람들에게 하 의병장의 처소를 물었지만 "근래에 오지 않았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마을사람들을 일본인들은 거칠게 심문했다. 하상태 의병장은 자신 때문에 주민들이 고역을 치르는 것을 보다 못해 그곳을 빠져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총을 난사하며 급히 추격해 오자, 품고 있던 작은 칼로 자살을 꾀했지만 날이 무딘 것이어서 중상만 입은 채 생포되고 말았다.
"나는 해동보국신민창의대장 하상태다. 한국과 일본은 순치(脣齒)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선량한 신하를 멀리하고 간신 이완용 등을 주요 직책에 취임하게 하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헌병보조원을 두니 실로 한국을 병탄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나라의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수치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으나 불행히도 죽음에 이르지 못하였다. (중략)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 의병이다. 지난번 의병장 이종협을 너희 부하로 하여금 총살시킨 사건으로써 명백하지 않으냐? 그런 고로 바란다. 내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의병의 이름을 부여해 달라."
말을 마친 그는 "속히 나를 죽여라! 나는 다른 일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시국을 탄식하며 통곡했다. 혀를 깨물어 자살을 기도하기 두 차례, 마침내 혼절하여 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 의병장을 도저히 인치(引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 소대장은 혼절한 하 의병장을 참살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국민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만, 어찌 그의 공적에 걸맞은 훈격이라고 할 수 있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