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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허위선생 손자 "이제야 희망 찾았어요"
◇허 블라디슬라브(왼쪽에서 두번째)씨가 형 게오르기(오른쪽), 아들 알렉산드라(왼쪽), 며느리 아이굴씨와 함께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부조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백소용 기자
“이제야, 파랑새의 꼬리를 잡았어요.”
항일 의병장 왕산(旺山) 허위(1854∼1908) 선생의 손자 허(許) 블라디슬라브(56)씨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을 거닐면서 가슴이 북받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뗐다. ‘희망이 생겼다’는 뜻의 러시아 속담이다.
“낯선 조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동포들의 도움으로 한곳에 모여 살 수 있게 됐어요. 이제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그간 귀국 후 온갖 어려움을 겪어왔던 허씨는 오는 11일 서울 강서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허씨 가족의 딱한 사연을 접한 한 독지가가 38평짜리 아파트를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다.
올해 초 아버지 허씨를 따라 입국해 일정한 거주지 없이 모텔 등을 전전하며 생활한 아들 알렉산드라(27)씨와 며느리 아이굴씨가 제일 먼저 이곳으로 이사하고, 나머지 가족 4명도 조만간 합류할 예정이다.
허씨 가족은 왕산 선생이 경북 김천에서 의병부대를 창설해 투쟁을 벌이다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자로 순국한 뒤 만주와 옛 소련 등지를 떠돌다가 지난해 6월 약 100년 만에 귀국했다. 왕산 선생의 순국 후 고향을 등지곤 한번도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조국의 품은 생각처럼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지질학 석사 출신으로 금광 발굴에 20여년 간 종사한 허씨지만 한국에선 마땅한 직업을 잡기가 어려웠다. 결국 허씨와 가족은 당장 끼니를 잇기 위해 경기 안성 등지로 흩어져 공장 일을 했다. 그런 까닭에 허씨의 새 보금자리는 그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조국의 따스한 품을 새삼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됐다.
파랑새는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허씨 자녀들이 영구 정착을 위해 한국말을 배우려 한다는 소식에 고려대가 1명에 대해 지원을 약속했다. 소망교회도 “허위 선생 자손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겠다”며 장학금 1600여만원을 내겠다고 해서 아들 부부와 형 게오르기씨의 아들 발로자(25)씨 등 3명이 고려대 한국어문화센터에 입학하게 됐다.
새삼 고국의 정을 느끼고 있는 허씨 일가족 8명은 최근까지 미뤄온 한국 국적 취득신청서를 지난달 23일 냈다. 고국 정착의 어려움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 명예를 잇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절차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소작농으로 일했다는 허씨의 형 게오르기씨는 “그 동안 내가 한국인인지, 키르기스스탄인인지 헷갈렸는데 이제야 한국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며 6월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백소용 기자
* 연천닷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06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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