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첼은 이문을 남기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기업보다 ‘버려진 문화를 되살리는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업가가 주목받는 경우는 크게 2가지다. ‘성공한’ 사업가든지 아니면 ‘이색적인’ 사업가가 그 경우다. 전자의 경우 매출액이나 순익 등 수치상 잣대로 보는 ‘성공’이고 후자는 이색적인 아이템을 상품에 반영하거나 사업가 본인이 색다른 경력을 갖고 있는 경우를 가르킨다. 그런데 이색적인 사업가이면서 성공한 사업가라면? 상품으로 치면 단연 ‘히트상품’으로 견줄 만하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된장, 간장 등 장류를 생산하는 ㈜메첼의 도완녀 대표가 딱 이 케이스다. 그의 전직은 바로 첼리스트.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독일에서 강사로까지 나설 만큼 잘나가던 그는 스님 출신인 남편을 만나면서 된장기업의 CEO로 변신해 주목받고 있다.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첫 만남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전도유망한 첼리스트가 왜 하필 장류기업의 CEO가 됐을까. ‘첼리스트 도완녀’에서 ‘된장기업 도 사장’으로 바뀐 것은 남편인 돈연스님을 만난 게 인연이다.
1970년대 후반 남산의 독일문화원. 대학을 갓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준비 중이던 20대의 도완녀는 불교철학이 발달한 독일로의 유학을 위해 수강생으로 등록한 돈연스님과 그곳에서 한 반 친구로 처음 만난다.
푸근하면서도 선한 인상의 첼리스트와 유머러스하면서도 박학다식했던 스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문화원 수강기간이 끝나자 그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도 사장은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고 당시 봉은사에 몸담았던 돈연스님은 법정스님이 종단에서 계속 일해달라는 부탁에 못 이겨 독일 유학을 포기한 채 불도에만 전념한다.
운명적인 해후는 그런 후 16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온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4년 동안 독일에서 브람스 음악원 강사로 활동한 도 사장은 이후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 한국심포니 객원 수석, 클래식 예술기획사인 한국예술기획를 차려 운영하는 등 음악인으로서, 사업가로서 숨가쁜 나날을 보낸다.
그런 와중 1992년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소련(당시)의 나움 그루버트 초청연주회를 주최한다. 연주회가 끝난 후 한국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루버트 씨는 도 사장에게 불교 관계자를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고, 불교계의 유일한 지인이었던 돈연스님을 수소문해서 찾은 끝에 16년 만에 둘은 해후하게 된다.
그 때가 도 사장의 나이 마흔. 이후 서로 일로나 개인적으로나 연락하는 일이 빈번했고 1993년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한다. 첼리스트, 혹은 음악분야의 사업가로 활동했던 도 사장은 남편이 운영하던 장류기업을 넘겨받아 대표이사에 오른다.
“나는 CEO, 당신은 브랜드 관리자”
도 사장 취임 후 스님의 장류기업은 승승장구한다. 지역농민과 대두 계약 재배를 맺은 것을 시작으로 1997년에는 장류 제품으로서는 드물게 TV홈쇼핑 판매도 개시한다. 이어 2000년 현재의 회사명 모태가 된 ㈜메주와첼리스트를 세운다. 줄임말인 ㈜메첼로 상호를 바꾼 것은 2006년도 와서부터다.
“저는 회사를 대표하는 사장으로, 남편은 브랜드 관리자 혹은 마케팅 담당자로서 역할을 수행하죠.”
문화공연기획사를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기업경영 노하우를 쌓았던 도 사장은 장류제품 생산의 핵심이라 할 항아리 관리에서부터 직원관리, 물류, 유통 등 전 분야를 총괄하고 돈연스님은 브랜드와 마케팅 활용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메주와 첼리스트’도 스님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메첼은 현재 주력제품인 된장(전체 매출의 60%)을 비롯해 간장(매출비중 12%)과 고추장, 청국장 등을 생산하고 있다.
“기업이라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이윤을 남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메첼은 이문을 남기는 콘셉트의 기업이 아닌 ‘버려진 문화를 되살리는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칭 ‘된장녀(?)’가 되겠다는 도 사장은 전통문화를 자랑스러워하고 이를 지켜나가겠다는 강한 신념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업의 이익도 뒤따라 올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15개 항아리가 6000개로, 매출 23억원
‘23억원의 매출, 강원도 정선과 경기도 연천 2곳의 생산시설, 그리고 6만여명의 회원과 연구소 가동 임박.’
회사 설립 9년째를 맡고 있는 ㈜메첼의 현주소다. 2000년 11월 강원도 농어업인 대상을 수상하더니 2001년에는 강원도 푸른 강원 마크 인증, 이어 2002년 자사의 된장·간장·고추장이 농림부 전통 식품으로 인증받는 등 메첼의 ‘된장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무엇보다 메첼의 성장속도를 가장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바로 항아리 수. 메주를 숙성시켜 걸러진 물은 간장이 되고 나머지는 된장이 된다는 점에서 항아리는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최고의 생산시설이자 도 사장과 스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물단지’와 같은 존재다. 항아리 1개 가격은 보통 60만원. 300만원대의 고가 항아리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15개의 항아리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대략 6000개 정도 됩니다. 정선에 3300개, 그리고 연천에 2700개 정도 있어요. 내년에는 1만개의 항아리를 확보할 겁니다.”
메첼이 사용하는 항아리는 200리터짜리로 드럼 1개 분량의 크기다. 왜 그 크기의 항아리를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도 사장은 “너무 작으면 땅만 차지하고 너무 크면 (일하시는) 할머니가 빠지게 된다”며 웃음으로 대신했다.
연천군의 70고초려? 군민기업 대접받아
경기도 연천군에서 메첼은 ‘군민기업’ 대접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연천군 땅의 90%가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고 나머지 10% 부지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물이 콩과 율무인데, 이를 활용한 기업이 지역경제를 이끌 것으로 지역주민들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콩과 율무는 전국에서 유통되는 것의 80%를 차지한다고 하니 당연히 연천군 입장서도 ‘콩 기업’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됐건 지역 내 장류기업을 물색하고도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던 연천군은 수년 간의 설득 끝에 2007년 드디어 10여년 동안 강원도 정선군에서 장류를 생산하던 메첼을 연천지역으로 ‘모셔오는’ 프로젝트에 성공한다.
이어 연천군의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인 ‘로하스파크’ 단지 조성의 핵심기업으로 메첼에 자본을 출자해 관민합작기업으로 회사에 ‘날개’마저 달아준다.
그런데 연천군이 정선군으로부터 메첼을 데려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보면 사연이 눈물겹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데려가기 위해 ‘삼고초려’했다면 메첼을 향한 연천군의 노력은 ‘칠십고초려’로 비유될 만하기 때문.
정선군에서 연천군으로 메첼을 유치하기 위해 연천군수를 비롯한 실무진들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70회에 걸쳐 정선을 방문해 도 사장과 돈연스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연천군의 정책개발과 사람들이 끈질기게 찾아와서 결국 허락했습니다. 대신 최고의 된장을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확보해 줄 것을 요청했죠.”
연천군으로 본사를 옮긴 대신 메첼은 ‘군남면 옥계리’라는 기름진 땅을 선물받았다. 예전 고구려 고분군 지역이기도 한 옥계리는 민통선 안에 위치해 있어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한때 세계적 다큐멘터리 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측이 20년간 임대해달라며 요구했을 정도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데리고 있는 도 사장 부부. “시기상으로 자식들에게는 기업을 물려줄 생각은 없다”는 그들은 “우리 장류를 아끼고 내 몸처럼 여기는 후계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넘겨주겠다”며 장류기업의 역사와 전통이 단절되지 않기를 고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