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래진 하늘이 좋아 몇 번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가 된다. 맑고 푸른 그 빛이 좋아 그렇게 푸른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얀 도화지에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온통 모두가 푸른빛의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녹음으로 짙푸르던 여름의 수목들이 가을을 맞으며 제법 제 멋을 준비하고 있다. 옷을 갈아 입기위해 제 몸을 씻는 연습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비슷한 마음을 만난다. 내 속의 나를 바라보게 해주는 나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으라고 꾸짖기도 하고 인생에 대해서도 가끔은 말해주기에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나무를 보며 삶을 보게 된다.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래, 저 나무처럼 저렇게 살고 싶다고, 순리대로 욕심 부리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맑게 살고 싶다고 마음의 소원을 가져보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나무를 보면서, 하늘에서 내려주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땅의 기운으로 싱그럽고 울창한 숲을 이뤄가는 나무들이 어쩌면 우리 사람들과 꼭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히 어는 종교를 들추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아침이면 감사의 기도를 하면서 시작하고 맡은 일에 열심으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면 또한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들판에는 가을 곡식들이 맘껏 태양을 빨아들인다.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 쭉정이가 아닌 알곡을 위해 하루의 강렬한 갈 빛에 제 마음을, 제 몸을 태우고 있다. 태우지 않고서야 어찌 제 몫을 다 할 수 있을까? 곡식들이 그렇듯이 우리네 사람살이도 나를 태우지 않고서야 어찌 깊은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내 그릇이 종재기도 항아리도 될 수 있다 하는데, 진정 나는 무엇이 될꼬? 무엇을 담을 수 있는 맑은 그릇이 될 것인가? 오늘 가을 하늘을 만나며 내게 물었던 내 속의 질문이었다.
저 파란 하늘이 저렇게 파란 빛으로 있는 것은 저 혼자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을 오늘 나는 한 생각을 만났다. 어쩌면 여름 내 푸른빛으로 물들였을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애썼을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이른 아침 지절이던 새들의 노래가 하늘 높이 솟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앉아 한을 토해내며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어우러진 하모니들의 합창이 하늘에 닿았기에 아마도 오늘 저 하늘이 푸른빛으로 있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아무 말 없이 흐르던 강물에서 저 푸른 하늘빛이 비춰지고 있음을 보며 저렇듯 가을 하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정 흙으로 빚어질 그릇이어든, 종재기 보다는 항아리의 넓은 그릇이길 바램해 보는 날이다. 이왕이면 뜨거운 불가마 속에 구워지는 맑고 견고한 그릇이 되길 바램해 보는 것이다. 낮은 온도에서 구워지는 토기보다는, 도기가 되기를 더 깊은 나를 들여다보며 더 높은 온도의 가마 속의 불에 달구어져 도기보다는 도자기의 맑고 청아한 소릴 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있는 것이다. 흙 피리(오카리나)처럼 맑고 청아한 깊은 영혼의 소릴 낼 수 있는 그런 도자기로 구움 받기를 소원에 놓는 날이다.
푸르고 청아한 저 가을 하늘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를 담은 견고한 도자기로 구움 받기를 마음으로 깊이 기도하는 날이다. 어쩌면 그릇마다의 몫이 다 있을진대 어찌 내 욕심으로만 될까? 토기쟁이의 마음에 귀를 가만히 대어보는 날이다. 가을 하늘의 푸르름이 맑아 좋은 날이다.
09/21/2005.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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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가의 진흙
글/신 영
세찬 소용돌이
그 사나운 물결이
나 휩쓸어 갈지라도
나는 그 속에서 더욱 더
당신 구원의 손길 기다립니다.
광란의 소낙비
그 세찬 물줄기
나의 잔등 마구 때릴지라도
나는 그 속에서 더욱 더
당신 사랑의 손길 기다립니다.
폭염의 여름
그 작열하는 불꽃이
나의 가슴 숯덩이처럼 태울지라도
나는 그 속에서 더욱 더
당신 자비의 손길 기다립니다.
개천가의 진흙같이
보잘 것 없는 나
그래도 당신의 고귀하신 손으로
곱게곱게 빚어주시면
사랑하는 당신께 드리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