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후 경기 연천군 전곡읍 시외버스터미널 옆. 주말이지만 승객이 없어 10여대의 택시가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점포들도 식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리만 날리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식당도 몇 개의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을 뿐이었다.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5만600여명) 연천군의 한 단면이다. 인구가 적은 것도 모자라 매년 줄어들기까지 해 지역경제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해 11월 땅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연천군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연천군은 또 경기도 내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도 받고 있다. 이런 사정은 인구가 5만6000여명인 가평군도 마찬가지다.
연천닷컴 이석우(李錫雨·45) 대표는 “획일적인 법 적용으로 연천군은 지역경제가 오래전부터 빈사 상태”라며 “군(郡)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지경인데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등 규제만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10개 시군이 있는 한강 이북의 경기 북부에 건설된 고속도로는 12㎞에 불과하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는 고양시와 구리시, 남양주시 일부 구간이 전부다. 경기 남부의 고속도로는 350여㎞에 달한다.
이런 기반시설의 차이로 인해 경기 남북에 들어선 사업체와 대학 수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 전국의 미군 공여지 8000여만평 가운데 파주 연천 동두천 등 경기 북부에 5430여만평(68%)이 몰려 있어 지역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남부에 비해 지역이 크게 낙후한 상태지만 경기도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같은 규제를 받을 뿐 아니라 군 관련 규제도 심해 경기 북부에서는 선거 때마다 독자적인 발전방안을 찾자며 분도론(分道論)까지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내에서의 격차는 남북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같은 남부나 북부라도 지역간 격차가 다른 도에 비해 지나치게 큰 편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서로 이질감을 느끼는 ‘한 지붕 두 가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러브호텔이라도 들어섰으면 좋겠어요.” 6일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의 한 주민은 푸념하듯 이같이 말했다. 일산신도시가 러브호텔로 몸살을 앓던 2000년 여름, 이곳은 상수도마저 없던 도시 속 농촌이었다. 도로가 포장되고 이제 상수도가 들어오지만 슬레이트 지붕의 집과 좁은 골목길 등 시골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24일 재선거가 치러지는 덕양갑의 한 국회의원 후보 예정자는 “아파트 주민은 문화에 관심이 많고 농촌 주민은 기반시설을 원해 공약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분당신도시로 불리는 성남시 분당구는 92년 입주와 동시에 자치구를 만들자는 주민 여론이 거세 ‘토박이’ 주민이 많은 수정구 및 중원구와 갈등을 빚고 있다. 도서관 문예회관 등 복지시설이 분당에 집중돼 기존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편이다.
같은 도와 시 안에서 이런 심한 격차는 주민간에 이질감을 유발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대진대 최주영(崔周永·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낙후지역 개발정책을 펴고 낙후 정도를 감안해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도 차등화해야 한다”며 “군 관련 규제를 받는 경기 북부에는 민관군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