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마치고 오랜만에 재호네 집을 갔습니다. 벌써 4년째 누워있는 재호입니다.
대학에 들어가 신입생 환영행사에서 목을 다쳐 전신마비가 된 친구입니다.
교회 중고등부에서 만나 지금까지 많은 친구들이 중고등부를 거쳐갔지만 모두 잘들 살고 있는데 재호만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기타도 잘치고 축구도 잘하고 노래솜씨는 가수를 하라고 권할만큼 재주가 많은 친구입니다.
그런 재호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고였는데 그렇게 누워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고 당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괴로워하고 몸이 마비된 것보다 그의 마음이 마비된 것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워 했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길 싫어하는 재호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제 나가서 사람들과 만나고 지금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할 일을 찾자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아직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재호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대학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내년에 학사학위를 받는다고 합니다.
사고 이후에 여러모로 법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아쉬움이 많았는지 법무행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팔 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재호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숙연해 질 따름입니다. 아니 미안하고 두다리로 뛰어 다니는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한때 재호와 가스펠 가수를 해보자고 약속한 때도 있었습니다.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하기에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저는 가수하자고 합니다.
전신마비로 보낸 지난 시간이 얼마나 재호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만들고 있을까?
펄펄 날아 다니던 재호가 하루 아침에 천장만 바라보게 된 그 아득한 추락을 어떻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어제 갔더니 저에게 자꾸 팔이 가늘어진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저는 그저 많이 먹고 할 수 있는대로 움직이라는 말 밖에 못했습니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하루 종일 재호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어머니와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재호 방만 겨우 보일러를 돌리고 나머지 방들은 썰렁하게 지냅니다.
무엇이 먹고 싶은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지 차마 묻지를 못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어머니가 교회에 나오십니다. 두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저도 많은 안도를 했습니다.
재호 어머니가 강해야 한다.
그래야 재호가 일어선다.
저도 함께 기도를 합니다.
내년이면 재호도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대학 졸업을 합니다.
또,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향하여 날개짓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저를 올려다 보며 재호는 자신이 내년이면 졸업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재호야 팔만이라도 움직이면 좋겠지?”
너무 안타까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재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럼요, 그렇게만 된다면 이 모든 것을 감사하고 살 수 있어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재호의 팔만이라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 주세요, 하나님! 네?”
지방선거 와중에 있는 요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저들이 지도자일까 하는 허망한 생각이 듭니다.
잠도 못자고 수많은 사람들을 쉼없이 찾아 다니며 그들이 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제가 보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그들의 꿈이 과연 무엇일까?
팔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감사하며 살 수 있다고 하는 재호의 절규 속에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호는 분명히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날개짓을 할 것입니다.
그때 재호는 분명 우리들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여러분,
오늘 이 모습을 감사하는 한 주일 되시길 바랍니다.
2006년 4월 마지막주 월요일 아침에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