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얼굴에 담긴 웃음/신 영
초목들이 푸르른 여름이 젊음이라면 아마도 꽃을 지우고 열매를 맺어 가는 가을이 늙음으로 가는 길이리라. 정녕, 보여지는 것들의 모습으로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하리라. 하지만, 분명 보여지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노인 분들의 주고받으시는 대화에서는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저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에 늙은이란 이름만이 달려져 있을 뿐임을 느꼈다.
엊그제는 우리 집에 우연찮게도 어를 들 몇 분을 모시는 일이 있었다. 그 중의 몇 분은 자주 얼굴을 뵈울 수 있는 어른들도 계셨지만, 다른 몇 분들은 처음 인사를 올리는 분들도 계셨다. 연세로 보면 정말 할아버지라고 여쭈어도 될 연로하신 분들도 몇 분 계셨다. 저녁을 드시며 나누시는 대화 속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만 했다. 너무 재미가 있었다. 특별히 젊은이, 늙은이의 구분이 없음을 새삼 알았다. 가끔씩 재미있는 요즘 아이들의 신세대 말로 질문을 해 보기도 하시는 여자 분의 그 모습은 정말 소녀 같았다. 그 말의 어투와 웃음기(장난기 어린)가 듣는 젊은 나를 흥분되게 했다.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다. 어른들의 오가시는 나누는 말씀들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얼굴마다 골을 이룬 깊은 주름들 속에는 정말 아름다움이 듬뿍 들어 있었다. 활짝 웃으시는 그 웃음에서는 젊은이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세월을 살아오신 그 경험과 사랑의 지혜가 담겨져 있었다. 그 골 깊은 주름에서는 알 수 없는 사랑의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만들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그 아름다운 사랑의 샘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지혜의 샘'인 것이리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걸어오신 길에서 얻었던 보석들이 모아져 반짝거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바라보는 나 자신이 그저 행복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저렇게 늙어가기를 마음에 소원 하나 담으며 그렇게 바램으로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집안에만 계시지 말고 저렇듯 어른들의 모임이 있을 때는 참석을 늘 하시길 권해드리고 싶었다. 또한 젊은 우리들도 어른들이 함께 자리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보았다. 한 교수님은 연세가 지극하셨는데도 얼마나 겸손 하시던지 젊은 내가 인사 올리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겸손하셨다. 즐거움으로 웃음을 보일 때는 어린 아이처럼 맑았다. 그 맑은 얼굴에서는 그 움푹 패인 주름마저도 아름다웠다. 보여지지 않는 속의 나이가 또 있음을 알았다. 몸은 비록 늙어 있어도 마음은 맑은 생각으로 계신 어른들을 뵈면서 저렇듯 청아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늘 마음을 닦는 일이겠구나!, 늘 나를 비어놓는 일이겠구나! 이런 귀한 생각들이 모아졌다.
서로가 서로를 귀히 여기시고 존중해 주시는 어른들의 모습에 젊은이들에게서 아쉬웠던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 중에는 늘 나의 부족한 부분과 내 것을 먼저 앞세우려는 모습들, 내 아이들, 내 가족들, 언제나 '내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바로 다름 아닌, 내가 나 자신을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비춰주는 '거울'로 어른들이 계셨던 것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을 만큼 감사한 저녁 시간이었다. 또한 한 어른께서는 돌아가셔서 엽서를 하나 보내셨다. 잊은 것이 있노라고 하시면서 예쁜 엽서에 음식 맛과 사람 맛이 좋으셨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보내주셨다. 너무도 부끄럽고 또한 감사함이 일었다. 정말 핑계가 아닌,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이렇듯 어른들을 자주 모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어른 들 보다도 내 자신이 더욱 즐거웠던 시간이었기에 아마도 아쉬움이 남았나보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이 돌아왔다. 계단이 많은 우리 집 현관 밖을 나서려는 어른을 안타까워 가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신 노인이 또 계셨다. 옆에서 부축을 해 드리겠노라고 말씀을 드리며 함께 계단을 내려가시던 모습은 며칠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서로를 아껴주시는 마음들이,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내게 그렇게 오래도록 남았다.
늘 멀리 있는 듯 싶은데, 세 아이들을 정신없이 키우다 보니 '불혹(不惑)'을 올랐다. 아마도 금방 지천명(知天命)도, 이순(耳順)도, 고희(古稀)도 되어 며칠 전 만나 뵈었던 어른들처럼 그렇게 늙음으로의 길을 걷게 되리라. 그 때쯤 정말 맑은 마음으로 맑은 웃음으로 살아가길, 엊그제 만난 어른들처럼 그렇게 맑게 늙어가기를 소원에 놓아보면서...
06/23/2005.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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