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들은 물들어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나눠주고 있다. 푸르른 가을 하늘과 울긋불긋 차려입은 가을나무들의 조화는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한다. 자연과 사람과의 만남은 이 가을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리 마음과 몸으로 느낄 수 있을까? 곡식들이 무르익어 풍족하고 늘어선 나무들마다 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아름드리 달려있는 밤나무가, 풋풋한 대추들이 나무에서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듯 행복한 모습들이다. 감꽃 피워내던 감잎은 내려놓고 감나무엔 열매만이 가득하다. 주렁주렁 맺은 열매들이 이 가을을 맘껏 감사의 축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엊 그제는 그동안 준비했던 시집과 수필집을 선박으로 부치려고 이리저리 필요한 곳을 찾아보았다. 항공편보다는 운임비가 저렴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안내해주는 분이 자세히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기본이 얼마인데, 아마도 그 부분에서 좀 여유가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곁들여 주었다. 그래서 무엇을 더 넣어 보낼까 생각을 하다 문득 부피가 커서 가져가기 힘든 물건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 2년 전에도 북을 하나 마련해서 들고 갔었다. 전통춤과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탓일까? 마음이 늘 그쪽에 가 있기에 그럼 북을 더 준비하기로 했다. 북소리를 들으면 늘 마음 깊이 평안함을 만난다. 사람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바삐 지내다 내 마음 깊이에 있는 나를 만나고 싶을 때는 북소리가 가끔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정신없이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어보기도 한다. 춤이라야 뭐 특별할 게 없다. 마음의 이끌림대로 북소리에 맞춰 몸을 편히 나두면 저절로 춤이되는 것이다.
문득 며칠 전 TV 뉴스를 보게 되었다. 가을겆이로 바쁜 농부들의 일손과 일년내내 가꾸어 온 곡식들이 제 값을 받지 못해 논에다 불을 지르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게되었다.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으면 일년내내 피땀을 흘리며 정성들여 가꾸어온 살 같은, 자식 같은 곡식에다 불을 지를까? 누구를 탓해야 하나? 그 답답함의 한의 끄트머리는 하늘에 올라있고, 말없이 지켜보는 하늘이 원망스러울 저 농부들의 심정이 가슴으로 다가와 못내 아픈 마음으로 남았다.
그 옛날에는 신문고(申聞鼓)가 있었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절차를 거쳐서도 해결하지 못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왕에게 직접 알릴 수 있도록 대궐에 설치한 북. 바로 신문고(申聞鼓)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지금 저 농민들이 피눈물을 쏟으며 울부짖는 저 울음을 토해 낼 오늘의 신문고(申聞鼓)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토하지 못하는 농부들의 울음의 북 소리는 가슴을 치고 울리어 하늘에 닿고 있다. 너무도 멀리, 높이에 있는 신문고는 아무리 길게 만든 북채를 휘둘러도 닿지 않는가보다. 그저 저 답답한 가슴에서 울릴 뿐, 저 답답한 소리가 울음이 되어 눈물로 흐르고 콧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너른 들판의 곡식은 베어지지 못하고 제 몸을 태우고 있다. 그 연기 하늘에 올라 가을 하늘빛에 하소연 할 뿐, 신문고(申聞鼓)의 북은 오늘도 울리지 않고 있다.
무엇이나, 어느 곳에서나 치우침은 늘 화를 불러온다. 혼자가 아닌 세상에서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우리면 좋겠다. 무르익어 아름다운 저 산천이 누구 한 사람에게만 주신 축복은 아닐 터이기에 농부의 가슴이 되어 만나는 가을의 풍경이면 좋겠다. 가을 단풍이 제 스스로 붉어질 수 없듯이 사랑을 서로에게 나누며 만나가는 아름다운 가을이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는다. 푸르른 가을 하늘이 있어 더욱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산천들이 귀하고 값진 이유일 게다. 이렇듯 혼자가 아닌 어울어진 우리의 삶이기에 더욱 감사하고 복된 날이다. 서로에게 맑은 마음과 사랑의 마음 하나 나눠간다면 억울한 북소리 혼자 끌어안지 않고 내어놓고 위로받는 귀한 신문고(申聞鼓)의 장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북소리 둥둥거리는 오늘이면 좋겠다. 답답한 속 내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런 평안한 만남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응어리 져 타는 농부의 마음 북소리에 녹아지고, 세상살이 힘겨워 애타하는 가슴들에 소망이 될 수 있는 그 북소리 이 가을 하늘에 울려퍼지길 마음에 소원 하나 남겨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