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고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순리일 것이다. 누가 흘러오는 세월의 물을 막을 수 있으며, 또한 그 물을 잡을 수 있을까? 2005년 을유년(乙酉年)을 보내고, 2006년 병술년(丙戌年)을 맞이하는 오늘이 다만 새롭다. 새해 첫 날의 마음가짐이 특별하지 않기를 그저 어제의 오늘처럼 내일의 오늘도 내 마음에서 평안한 하루를 맞기를 마음을 모아본다.
누가 봄을 시작이라 하던가? 봄을 위해 겨울의 시작이 있었을 뿐인 것인데, 다만 내 눈에 보이는 새순들과 새 이파리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일진대 말이다. 끝, 끝은 끝이 아님을 어느 순간 만날 때가 있다. 다만 그 끄트머리가 바로 시작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 놀라운 신비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일까? 문득 삶이 힘겹다고 생각의 복잡함을 느낄 때면 난 멀리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저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저 멀리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멀리의 것들을 바라보면 이내 마음이 평안을 만나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 가운데, 주부의 역할은 끝이 없다.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한 가정의 며느리로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역할은 늘 쌓여있다. 모두들 기다리지 못하고 이 한 몸을 찾는다. 특별히 연말연시에는 더욱이 그렇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명절을 맞으며 주부의 일들은 하고 또 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 스트레스만 가득 쌓이기 마련이다.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 그릇만 보아도, 빨랫감들이 가득 쌓여있는 런두리 룸(laundry room)만 보아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말은 기계가 알아서 척척 해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이 주부의 욕심이라니...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즐겁기만 해야하는데, 서로의 보이지 않는 벽의 높이는 왜 그리도 쌓여있는 것일까? 신혼 초에는 명절 때 만나는 동서간의 보이지 않는 맞서기를 하더니,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 자랑이 시작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성적이나, 학군 등을 따져가며 서로가 서로의 키를 견주어 보는 것이다. 내심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속을 슬쩍슬쩍 긁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십여 년 동안 수십 차례의 만남을 가졌었다. 상처를 가져오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 상처가 아물 즈음이면 또 다른 상처의 자리를 만나게 되었다.
결혼 16년 동안 늘 이맘때면 혼자서 열을 받기도 하고, 식히기도 하고 그렇게 지냈었다. 주변을 둘러 시댁 식구들이 가득한 내 시집살이는 늘 그랬었다. 물론 그 많은 일들 속에서 단단해지고 지혜도 생겼으리라. 지난 해 시댁 어른들이 연세가 있으시니 한국에서 한 5년을 생활을 하고 싶다하시며 준비를 하시고 한국으로 이사를 하셨다. 처음에는 홀가분한 며느리 마음이 되기도 하고, 자유로움으로 훨훨 날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고 나니, 왠지 쓸쓸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특별히 할아버지 할머니를 주말이면 찾아가 지내다가 오던 아이들이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으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 계시니 아이들이나 엄마 아빠인 우리도 쓸쓸한 마음이었다. 이렇듯 떨어져 있으니 더욱 그리운 사람들임을 또 깨닫는 귀한 날이었다. 형님네 내외도 와싱톤에서 지난여름 하와이로 가시니 오지 않으셨고, 프랑스에 있는 시누이 내외도 엄마, 아빠가 한국에 계시니 이번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단란한 우리 가족끼리의 새해를 맞았다. 시끌시끌해서 힘겹게 느끼던 연말연시가 조용하고 간편하니 더욱 좋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몹시도 어색한 나를 만나고 있다.
을유년(乙酉年)을 보내고, 2006년 병술년(丙戌年)을 맞으며 끝과 시작이라는 느낌은 갖지 않는다. 다만 어제의 오늘이 이어져 내일의 오늘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늘 평안한 오늘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서일 게다. 하루에 감사한 날을 늘 만나길 소원하기에 그럴 것이다. 내 주변의 답답함이나, 속상함으로 있을 때는 바다를 찾거나, 산을 찾거나 자연을 만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찾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눈을 감고 깊은 내 속의 나를 찾아 묵상/명상으로의 시간을 마련해 봄은 어떨까? 자연은 늘 내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생명이 흐르는 것에는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이 모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실컷 마음 편안한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늘어놓는 것도 좋은 한 방법일 것이다.
